여름 휴가 때 원주역사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입장을 하니 1층 한 켠에 최규하대통령기념사업회가 마련한 코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곳엔 대통령 재직 당시에 탔던 관용차, 생전에 사용했던 일상용품, 활동 이력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제10대 대통령이었던 고 최규하 대통령의 고향이 원주였더군요.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되어있는 분이기에 더 관심이 쏠렸습니다.
1919년 7월 16일에 태어나 원주보통학교, 경성제1고동보통학교, 동경고등사범학교 한국외국어대를 졸업, 1946년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후, 1951년 외무부 통상국장으로 발탁되면서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1959년 외무부차관, 1967년 외무부장관을 역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1979년 국무총리에 임명되었고, 1979년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됩니다. 하지만 1980년 대통령직을 사임한 다음, 1981년에는 국정자문회의 의장이 되었습니다. 평생을 올곧고 청빈하게 지내다가 2006년 10월 22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서거, 10월 26일 국민장의 예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되신 것으로 발자취가 요약되어 있었습니다.
기념관을 둘러보며 몇 가지 눈에 띄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물건은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정신으로 아껴 쓰는 것을 몸에 밴 실천으로 사셨고(낡은 고무신, 연탄난로, 30년 된 라디오, 50년 된 선풍기 등),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 실력에 탁월하였으며, 부인 홍기 여사가 알츠하이머로 8년 동안 병상에서 지낼 때도 직접 병간호를 하며 매일 병상 일기를 썼는데 그 쪽지 일기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그날의 컨디션, 대소변 유무와 양, 약 복용과 차도 등). 그런데 그 일기가 일반 노트가 아니고 달력을 잘라서 만든 메모지였습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일반 시민으로 생활할 때는 이웃들이 전직 대통령인지도 모를 정도로 소박하였으며, 외교관이면서도 골프를 치지 않았던 분으로 절제와 검소의 청렴한 지도자였고, 국무총리 재임 시에는‘부인조심, 비서조심, 자녀조심’이라는 말로 공직자의 부패를 경계했답니다.
그러나 1980년 8월 16일 오전 10시, 8개월 간의 대통력직을 사임하면서 특별 성명을 발표합니다.“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책임정치의 구현으로 불신풍조를 없애고, 불행했던 우리 헌정사에 평화적인 정권 이양의 선례를 남기며... (중략) 시대적 요청에 따른 안정과 도의와 번영의 밝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애국충정과 대국적인 현지에서 나 자신의 거취에 관한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즉 나는 오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후략)”
외교 관료 국무위원 출신으로 어떤 정당 가입이나 지지 없이 무소속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군부의 반란 사건과 관련해 여러 차례 증언을 요청받았으나 한 번도 증언대에 서지 않았고, 끝까지 침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선한 가을에 다시 한 번 더 묘소를 방문해 볼까 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퇴임 후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양현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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